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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시 생활수기 공모 당선작 : 흰 코트와 모자 | |||
| 글번호 | 199 | 등록일 | 2016-09-05 |
| 등록자 | 관리자 | 조회수 | 346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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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일 제17회 정읍시 사회복지의날 행사와 관련하여 제1회 생활수기 공모전에서 박순애 선생님의 최우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에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흰 코트와 모자 (느티나무요양원 : 박순애)
봄이 조금씩 다가설 때쯤, 하얀 코트에 모자를 쓰고 손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요양원 문턱에 들어서시는 할머니. 치아 하나 없이 웃는 입가에 미소는 정말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예쁜지 얼른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딱 3일만 요양원에 계시다가 서울에 있는 아들집으로 가시겠다는 할머니, 그러나 그 3일의 발걸음은 이곳에서 4년을 머물게 했다.
가족도 쉽게 알아보지 못하실 정도로 치매가 심하셨다. 작은 체구에서 솟아나는 힘과 거침없는 말투는 그 누구도 어머니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치매로 인해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할머니. 특히 나가려는 집착은 직원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거실 창의 방충망을 뚫고 나가시기도 하고, 높은 창문은 의자를 가져다 딛고 올라가기 일쑤였다. 머리는 얼마나 좋으신지 직원들이 빨래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TV를 보시는 것처럼 하고 계시다가 빠르게 현관문을 통과해 나가기를 반복하셨다. 그 일상은 매일 매 시간 반복적으로 시도되고 있었다. 그 시도가 주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밤이고 새벽이고 시간을 가리지 않아 직원들이 쉬지를 못하고 어르신 옆을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어떤 때는 새벽 3~4시에 소리를 지르면서 침대와 서랍장을 옮기시는 소동을 벌이셔서 침대와 서랍장 등을 모두 빼내어 온돌에서 생활하시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집중케어에도 어르신은 요양원을 3번이나 나가시는 일이 발생했다. 한번은 출근하는 직원이 차를 타시려는 어르신을 발견하고 모시고 와야 했고, 한번은 길을 걸어가시는 것을 발견하여 모시고 오기도 했으며, 한번은 파출소에 신고하여 어르신을 모시고 오기도 하였다. 직원들은 어르신과의 생활이 긴장과 연속되는 스트레스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 어르신으로 인해 요양원의 많은 사례관리가 이루어졌고, 목걸이, 팔찌가 만들어졌고, 현관, 창문 등에 자물쇠와 걸쇠가 하나씩 늘어갔다. 결국 주방에 배식구도 강화유리로 막아야 했다. 또한 착용한 기저귀를 찢으셔서 환의복이 도입되고 치매복이 들어왔다. 찢어지던 기저귀는 대신에 벽지와 장판으로 옮겨갔다. 어르신으로 인해 직원들은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일을 치매증상 없이 조용히 보내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욕설로 변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욕설을 듣게 되었고, 직원들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변화가 심해졌다. 어르신의 치매는 욕설과 폭력을 동반하면서 중증에서 말기로 접어들고 있었고 그 과정이 종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종사자들 얼굴과 팔에 멍이 들고, 때로는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르신을 내 보내자는 종사자는 없었다. 그 이유는 어르신의 얼굴에 항상 웃음이 있었던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조금씩 줄고 있었다. 그와 함께 어르신의 웃는 모습을 보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프로그램 시간이면 어르신들과 싸우기 바빴고, 기력도 조금씩 떨어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일까 어르신의 치매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욕설이 더 심해지면서 여자를 거부하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신 것이다. 요양보호사들에게 거침없는 폭력을 하셔서 식사와 기본 케어는 남자인 원장님의 몫이 되어갔다. 어르신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혼자 살아오셨다. 남편분이 40대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다. 원장님의 나이가 남편분이 돌아가신 나이대와 비슷하니 원장님을 남편으로 생각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요양보호사를 폭력으로 대하는 이유도 남편과 바람을 피운다고 오해하시는 것이었다. 출근 시간대가 비슷하다보니 원장님과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오는 직원은 무조건 남편(원장)과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점점 체력이 떨어져가는 어르신은 폭력 대신에 침을 얼굴에 뱉으시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약물치료와 입원치료, 직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어르신께서 차츰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욕설도 줄어들고 시설을 떠나려고 하는 모습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원장님이 눈에 안보이시면 바람을 피운다며 직원들을 괴롭히곤 하셨지만 그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맑은 정신이 돌아오시면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보이시며 고맙다는 표현도 하셨다. 이런 모습을 직원들은 감탄하면서 신기해했고, 어머니가 저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더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어머니’ 하고 부르면,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포근한 엄마 같은 마음으로 밥은 먹고 왔느냐고 하시면서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건내 주시면 내 마음이 울컥 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어르신의 그런 행동이 기적 같다고 했지만, 행복한 시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갑자기 식사를 거부하시는 증상이 나타났고, 입맛이 없으신가 하여 죽과, 누룽지, 때로는 호박죽(어르신이 평소에 제일 좋아하시던 음식)을 드려도 자기를 죽이려고 밥에 독약을 탔다고 하시면서 거부하셨다. 다시 원장님이 식사케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장님도 소용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청과 환각 증세도 함께 보이기 시작하셨다.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증상은 딱히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식사거부로 인해 다시 병원에 입원하시자 L-tube를 하셔야 했고, L-tube를 자꾸 제거하시려 해서 억제대 사용이 시작되었다. 이 모습을 보호자분들은 참지 못해 했다. 그러기를 한 달. 다행히 요양원으로 복귀 하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손주를 알아보지 못하시지만, 잠깐씩 정신이 맑아지실 때는 첫 만남 때의 미소를 잊지 않으셨다. 가끔씩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을 때면 가슴이 저미는 아픔이 느껴진다. 우리들이 어르신께 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한탄 스럽다. 어르신의 연세(91세)가 많다보니 자녀들도 적극적인 병원치료를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어르신은 조금씩 조금씩 저 먼 세상을 향해 걷고 있는 듯 했다.
어르신의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낄 때 직원들은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도록 서로 이야기 했다. “어머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가 원하는 곳으로 마음 편히 가세요! 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어르신은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손주 결혼식도 잘 피하셨고, 설 명절도 지내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겨울답지 않게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어르신의 나이 92세. 그 힘들고 긴 여정을 마치셨다. 지독한 치매로 인해 말년을 힘들게 사셨지만 직원들에게는 많은 추억을 남기셨다. 지금도 어르신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작은 체구에 하얀 코드에 모자를 눌러쓰시고 환한 미소로 다가오셨던 그 모습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부모님의 유언은 임종 때가 아니라 평소에 하신 말씀이란 것을. 제가 5년 넘게 요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슴 아픈 건 치매환자를 모시는 과정에서 적절한 케어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이다. 루이소체, 알츠하이머, 알코올성 치매 등 다양한 형태의 치매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법,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처럼 진행이 빠르고 변화가 심하고 다양한 경우에 직원들의 대처방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낀다. 또한 종사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임종에 따른 상실감을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아쉽다. 어르신들의 상태 변화를 자녀분들에게 전달하면 치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요양원을 색안경을 끼고 보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가족들의 교육도 심도 있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르신을 모시면서 바라본 치매를 시에 담아 본다.
“ 상 실 ”
이제 너희들의 목소리도 너의 향기도 기억나지 않아도 참을 수 있지만 갈수록 희미해진 너희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나를 더욱 더 비참하게 한다.
더 이상 너희들을 백지위에 그릴수도 없고 너의 이름조차 자꾸 희미해지는 그런 어미가 미워진다.
가끔은 꿈속에서 너희들을 잡아보지만 너희들을 이미 내 사람을 잊은 채 사라져간다.
세상 누구보다도 보고 싶고 사랑한다. 너희 행복을 가슴 저미게 소망한다.
언젠가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너희들 곁으로 가고 싶다. 나는 바람과 풀이 되어 또 다른 인연을 엮어 너희에게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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